
미국이 자국 조선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 조선업체의 본국 건조를 일부 허용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특히 미국 현지 조선소를 이미 확보한 한화그룹은 이번 정책 변화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조선소 추가 인수까지 추진하고 있어 향후 미 해군 함정 사업에서 영향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외국 조선사의 미국 군함 건조 길 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 13일 외국 조선업체가 자국에서 미 해군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아무 해외 조선사나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에서 새로운 조선소를 건설하거나 기존 미국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 지분을 확보한 기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대상 선박도 제한된다. 현재 거론되는 선종은 수상전투함과 통합화물 보급유조선, 로로선 등이다.
기존 미국 법률상 미 해군 함정을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데 제한이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행정 권한을 활용해 예외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한화그룹이 주목받는 이유
이번 정책과 관련해 국내 조선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한화그룹이다.
한화는 이미 미국 현지 조선소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202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당시 한화는 미국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약 5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생산능력을 크게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미국 현지에 조선소를 보유한 데다 생산시설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국내 다른 조선사보다 가까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해군 관련 사업도 이미 진행
한화그룹은 단순히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방산·조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미국 해군의 차세대 군수지원함 사업과 관련해 개념설계에 참여하기로 했으며, 최근에는 미국 미사일방어청의 미사일 시험 계측선 건조 계약도 체결했다.
해당 선박은 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과 관련된 핵심 지원 자산으로 평가된다.
미국 정부와의 협력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추가적인 군함 및 지원함 사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오스탈USA까지 인수 추진
한화의 미국 조선산업 공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화디펜스USA는 최근 호주 조선·방산업체 오스탈의 미국 법인인 오스탈USA 인수를 검토하기 위한 제안을 전달했다.
아직 구속력이 없는 초기 단계의 제안이지만, 인수가 실제로 성사될 경우 한화는 미국 내 조선 생산 기반을 한층 확대할 수 있다.
오스탈USA는 앨라배마주 모빌을 기반으로 미 국방부와 해군, 해안경비대 등에 함정을 공급하고 있는 업체다.
한화 측은 오스탈USA의 기업가치를 최대 약 12억달러 수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조선소와 오스탈USA를 모두 확보하게 된다면 미국 동부와 남부에 조선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HD현대·삼성중공업은 미국 현지 기반 확보가 과제
국내 조선업계의 다른 주요 기업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세계적인 선박 건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재 미국 내 조선소를 직접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미국 현지 조선소 소유 또는 과반 지분 확보를 요구하는 이번 조건만 놓고 보면 한화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
다만 두 기업 역시 미국 조선업계와의 협력이나 현지 생산 기반 확대, 기술 협력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면서 미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보내는 신호
미국 정부가 한국 조선업체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미국 국방부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대상으로 전투함 관련 정보 요청(RFI)을 보냈다.
미 해군 역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에 급유함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RFI는 실제 계약에 앞서 시장에 존재하는 업체들의 기술력과 가격, 납품 조건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절차다.
이는 미국이 자국 조선산업의 생산능력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체를 중요한 협력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직접 언급한 필리조선소
한화의 미국 조선사업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언급된 것도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국방·혁신 관련 행사에서 한화의 필리조선소를 거론했다.
당시 필리조선소에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다목적 선박 건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미국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과 미국 밖에서 건조된 선박을 구매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과 해군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체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화오션에 새로운 기회가 될까
이번 정책 변화가 실제 제도화될 경우 한화그룹은 미국 내 조선소와 한국의 조선 기술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게 된다.
미국 현지에서 선박을 생산하는 동시에 필요에 따라 한국의 기술과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필리조선소에 이어 오스탈USA까지 확보한다면 미국 내 조선 생산능력과 방산 네트워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다만 미국 군함 건조 사업은 안보와 기술 이전, 생산시설 투자 등 여러 조건이 함께 적용되는 분야인 만큼 실제 수주까지는 상당한 검토와 절차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미국이 조선산업 재건을 위해 해외 기업의 참여 폭을 넓히고 있다는 점은 한국 조선업계에는 분명한 기회다.
그중에서도 미국 현지 조선소를 이미 확보하고 추가 인수까지 추진하고 있는 한화그룹이 향후 미국 군함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입지를 확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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